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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양연화

영화 양귀비. 왕조의 여인. lady of the dynasty



영화 양귀비. 왕조의 여인. lady of the dynasty
영화는 원래 곽재용 감독이 연출하다가 중도 하차하고 중국의 장예모 감독이 완성한 영화. 중국영화를 볼 때마다 그 웅장한 스케일이 놀란다. 여명, 판빙빙 주연.

양귀비(楊貴妃, 719년 6월 26일 ~ 756년 7월 15일)는 당 현종 이융기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성은 양(楊)이고 이름은 옥환(玉環), 중국 서시, 왕소군, 초선과 아울러 4대미인 중의 하나라는 양귀비,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도 부른다.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하였으며,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貴妃)[4]로 책립되었다. 이게 막장이라면 막장인데, 왜냐 하면 무혜비의 아들이 수왕이기 때문이다. 즉, 원래 총비였던 시어머니가 죽자 며느리가 그 자리를 계승한 꼴.
755년 양국충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했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가무(歌舞)에도 뛰어나고, 군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양귀비의 별명인 해어화(解語花)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말을 알아듣는 꽃, 얼굴만 예쁜 꽃 같은 후궁이 아니라 지적인 여자였음을 알 수 있다. 동시대의 이백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白居易)는 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曲)으로 하여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한 바와 같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여주인공의 하나가 되었다. 진홍(陳鴻)의 《장한가전(長恨歌傳)》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이후 윤색은 더욱 보태져서 후세의 희곡에도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유사한 플롯으로 만든 중국 3대 영화.
바로 왕조의 여인, 야연, 황후화.

장자이 오언조 주연의 야연


공리 주윤발 주연의 왕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