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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하추동

죽은 자의 사자후.

핵심을 잘 집어 낸 변호사 권경애의 요점정리.


죽은 자의 사자후.

권경애님의 사진.

-"말단 직원으로 입사해 40대에 CEO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었으나, 초등학교 중퇴로 인맥도 학맥도 혼맥도 없었던 사람. 돈과 권력의 카르텔로 힘을 확대하는 그 세계의 규칙과 가치에 철처히 적응해 성공한 사람.

그는 스스로 결백하다고 믿었다. 아마도 그는 신뢰와 의리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며 주변을 돌보는 선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타고난 심성을 떠나 그것이 그의 생존과 성공 무기였을 것이다. 그가 가진 것이 그것 뿐이었으니까. 자신이 가진 '돈'으로 '인맥'과 '권력'을 사는 거래는 '공범' 간의 신뢰와 의리가 없다면 성사되기도, 유지되기도, 보호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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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무너뜨린 것은 '배신감'이었고, 자신을 철저히 이용하고 버린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 그는 결백의 증거라는 일지를 남기고 죽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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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에서 두번이나 사면을 받은 사람. 참여정부 시절 성공불융자를 시작한 기업. '돈' 이외에 그를 엄호해 줄 튼튼한 보호막이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자신들 내부의 더 큰 권력이나 더 강한 네트워크를 건드리지 않고도 희생시켜 이용할 수 있다고 여겼으리라.

박근혜 정부는 '자원외교'의 실체를 감출 성동격서 책략의 가장 좋은 먹이감을 찾아냈고, 검찰은 딜을 하라고 고인을 밀어붙였다. 
타겟은 '반기문'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했던 자신이 속한 그 세계가 위협을 느낄만큼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믿었으며, 끝내 자신이 왜 희생물이 되었는지 모른 채 떠났다. 
고인은 비참한 패배자였고, 비정하고 냉혹한 그 세계의 음울한 증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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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명예훼손의 법리처럼, 사자(死子) 명예훼손도 '공공의 관심사'와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개인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가 앞선다. 이 또한 유족에게는 비정하게 들리겠으나, 이 사안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고인의 행적을 알아야 할 국민의 권리가 더 중요한 가치이고, 그래서, 고인의 명예가 보호받기 힘든 사안이다. 이보다 더 공적인 관심사가 얼마나 있으며 이 사안에서 고인보다 더 공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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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이 지면공개는 동의하면서도 육성녹음파일 공개는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족이 밝히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으나, 지면공개보다 육성 공개의 "대중적" 파급력을 유족도 인식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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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예를 보호하려 했던 유족의 비통함과 언론의 책무 사이에서 경향신문도 손석희도 수많은 갈등과 고민에 휩싸였을 것이다.

다른 경로를 통해 녹음파일을 입수한 JTBC는,
전력을 다해 사자명예훼손이나 지재권 침해(저작권 등록을 할 상황이 아니었지,,) 등의 법적 문제점을 검토했을 것이고, '보도시점'에 대해 머리가 터질 듯 고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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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주기 하루 전이었고, 인양 이슈가 다시 전면에 나설 조짐이 있었다. 
박대통령은 인양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며 관심을 유도하고, 
그 사이 검찰과 여권은 성완종 일지를 검토해서 자원외교와 대선자금에서 대중의 시선을 떼내고 성동격서 책략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을 시간을 벌려고 했을 것이다.

'닻내림 효과'. 언론 보도로 대중에게 처음 각인되는 내용은 이후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는 노벨경제학자의 행동경제학 연구처럼. 첫 프레임 짜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놈도 저놈도 다 똑같다는 대중의 환멸의 닻을 내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자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다. 대중에게 성완종 리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정확한 목적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손석희는 육성녹음과 종이 위 활자가 대중에게 갖는 파급력의 차이를 잘 알고 있는 언론인이었으며, 그의 보도시점 판단은 적절했다. 
손석희와 JTBC는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판단 하에, 
동종 업자들 간의 상도의를 어겼다는 비난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던 거다. 
손석희, 국민에 대한 언론의 책무를 상도의보다 우선했다. 
업종 외 국민으로서, 영리했고 과감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