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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성완종은 누구?

자수성가에서 검찰수사까지 결국…'기업인' 성완종은 누구?

200만원으로 건설업 시작…경남기업 인수 후 활동분야 넓혀

경남기업도 워크아웃만 3차례, '굴곡진 60년'

뉴스1

기자회견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News1 이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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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前) 경남기업 회장이 9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 조사가 표적수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성 회장은 유서에서도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성 전 회장은 1976년 서산토건을 인수하면서 건설업계에 처음 뛰어 들었다. 이후 대아건설을 인수한 성 회장은 2004년 경남기업을 품에 안은 뒤 매출규모 2조원이 넘는 기업을 일궈내며 건설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만원으로 서산토건 인수…2003년 경남기업과 인연
초등학교 4학년에 중퇴를 하고 서울로 상경한 성 회장은 신문배달과 막노동, 운수중개업 등을 통해 종잣돈을 모았다. 성 회장은 1976년 서산토건 오너였던 최순기씨가 개인사정으로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이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서산토건 인수금액은 200만원으로 성 회장은 사명을 대아건설로 바꾼 뒤 본격적으로 주택사업에 뛰어 들었다.

성 회장과 경남기업의 인연은 2003년 시작된다. 주택건설을 통해 자본금을 마련한 성 회장은 해외시장 진출을 고민하다가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경남기업에 눈독을 들였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토목·건축 공사를 수행한 경험이 풍부한 경남기업은 당시 대우그룹에서 분리돼 독자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등 경영권 부침이 계속됐다.

2003년 대아건설을 통해 경남기업 지분 51%를 확보한 성 회장은 이듬해 경남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한때 경남기업 매출액은 2조원이 넘어서며 성 회장은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장학, 문화 사업에 이어 정치까지…의원직 상실 이후 '시련'
1991년 사재 31억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한 성 회장은 단순 기업활동에서 벗어나 장학과 학술, 문화 사업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모친 유훈에 따라 장학재단을 설립했다던 성 회장은 지난 25년간 학생 2만8000명에게 장학금 300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기업 인수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감사, 법제처 정부입법자문위원, 주한 에티오피아 명예총영사 등을 맡은 성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다. 2003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특보단장을 맡으며 김종필 당시 총재를 보좌한 성 회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선진통일당(전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19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됐고 선진통일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새누리당 소속이 됐다.

하지만 총선 전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주민을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며 정치생명에 위기를 맞게 된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확정하며 성 회장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경남기업 회장으로 복귀한 성 회장은 회사 자금난과 법정관리 사태가 이어지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시련을 겪었다. 이후 해외 자원개발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부인 등 성 회장 일가 전체로 확산되자 이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기업 워크아웃만 3차례 '굴곡진 60년'
성 회장이 평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강조한 경남기업은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건설업체다.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건축과 토목 부문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 건설업체의 명맥을 이어왔다.

1962년 도급순위 30위권 건설기업 중 최근까지 순위를 유지한 업체는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경남기업이 유일하다. 9일 숨진 채 발견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이 회사 회장으로 재직했다.

1951년 설립된 경남기업은 한국 건설업체 최초로 증권 시장에 상장된 회사다. 1965년에는 태국 중앙방송국 타워 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건설업체 처음으로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이후 베트남 병원 신축공사, 인도네시아 도로공사를 연이어 수주한 경남기업은 1980년과 1982년 건설수출 '5억 불탑', '10억 불탑'을 수상하는 등 해외건설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72층 규모의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을 완공하며 베트남과도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해외건설을 바탕으로 몸집을 불리던 경남기업의 굴곡진 역사는 1988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대우 계열사로 편입됐던 경남기업은 그룹 해체로 1999년 계열사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남기업의 자금난은 심화됐고 같은해 8월 워크아웃을 처음으로 신청하게 된다.

성 회장이 회사를 인수한 뒤 한때 연간 매출액이 2조원이 넘어서는 등 성장세가 계속됐지만 2008년 터진 세계금융 위기가 경남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건설경기 위축에 따른 자금난으로 2013년까지 경남기업은 두 번 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경남기업은 자산매각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1조원을 웃도는 차입금과 금융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올해 법정관리 절차가 개시됐다. 회사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내려놓겠다며 채권단에 법정관리만은 막아달라고 부탁했던 성 회장은 요청이 거부당한데 대해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성 회장이 이명박 정부시절 추진된 해외자원개발에 발을 담근 것도 관급공사 위주의 사업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관계 로비를 통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성 회장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고 기자회견을 통해 "횡령한 사실이 없다. 왜 내가 자원외교의 표적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haezung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