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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양연화

역대 섹스 심볼/ 마를렌느 디트리히에서 샤론 스톤까지 http://instiz.net/pt/1552950

역대 섹스 심볼/ 마를렌느 디트리히에서 샤론 스톤까지


역대 섹스 심볼/ 마를렌느 디트리히에서 샤론 스톤까지 | 인스티즈

 

마를레느 디트리히 Marlene Dietrich

출생 : 1901년 12월 27일~ 1992년

사망 : 1992 5월 6일

출신 : 독일, 베를린

신장 : 1.68 m

닉네임 : 'Lili Marlene

매력적인 긴다리와 각선미로 새로운 트렌드를 불러일으킨 마를렌느 디트리히. 일찍부터주위 사람들로부터 'bedroom eyes'로 통했다고하니 그녀의섹시함은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1920년대 독일 영화계의숱한카바레 걸 중 한 사람에 불과하던 그녀는 1930년 당시 헐리우드에서 각광받고 있던 요제프 폰 슈테른(Josef von Sternberg)감독의 <푸른 천사 (Der Blaue Engel)>에 캐스팅 되면서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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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천사에서 서커스단의 천박하면서도 매력적인 가수 롤라 롤라(Lola Lola)역으로 분한 마를렌느 디트리히는 점잖은 중년 남자를 손쉽게 유혹하여 결국 파멸시키고야 마는 팜므파탈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고, 그것으로섹스 심볼의 대명사로 떠오르게 된다.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과 함께 파라마운트사로 소속을 옮긴 그녀는 게리 쿠퍼와 공연한 <모로코(Morocco)>에서다시 한번 유혹적인 카바레 걸 에이미로분하게 되었는데당시로선 파격적인 동성애적인 장면을 연출해대중들을 당혹케했다(그녀는 이 작품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대중들에게 열광적인지지를 받았던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 초반 미국은 이미 그레타 가르보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던 것.결국 디트리히는 가르보의 아성에 대적할 유일한 무기로 치밀하게 키워진다.

<불명예(Dishonored)>, <상하이 익스프레스 (Shanghai Express)>, <금발의 비너스 (Blonde Venus)>, <진홍의 여왕 (The Scarlet Empress)>, <악마는 여자다 (The Devil Is a Woman)>.. 등

그후 5년간 슈테른베르크와완벽한콤비가 되어가르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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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여자다를 끝으로슈테른베르크와의 질긴 인연을 청산한디트리히는 에른스트 루비치의 <천사(Angel)>, 조지 마샬의 서부극 코미디 <사진 (Destry Rides Again)>에 출연해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그무렵 나치는 디트리히를 불러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그녀는 나치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으며 1937년에 국적을 아예 미국으로 바꾸어버린다.전쟁이 격해지자그녀는 한동안 군위문 활동에 전념했고 때문에 1940년대엔이렇다 할영화는 없었으나 가수로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그녀의 힛트곡'Lili Marlene'은 독일군 병사들의 심금까지 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또 다시 배우로서 활발한활동을 펼친 그녀는히치콕 감독의 <무대 공포증 (Stage Fright)>, 빌리 와일더 감독의 <검사측의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프릿츠 랑 감독의 <오명의 목장 (Rancho Notorious)>등에 출연하면서 호평을 듣기도 했으나 1961년 <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ment At Nuremberg)>를 즈음해여배우로서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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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바우 Clara Bow

출생 : 1905년 7월 29일

사망 : 1965년 9월 27일

출신 : 미국, 뉴욕

신장 : 1.61 m

닉네임 : "It" Girl

이른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한 덕분에 그녀는 종종 매 웨스트나 디트리히를 제치고 스크린 최초의 섹스 심볼이란 타이틀로 불리우곤 한다. 빨간 하트 무늬 립스틱의 대명사이며, 무성영화시대였던 1920년대의 대표적인아이콘적 스타였고, 원조 잇 걸(The "It" Girl)이라고 알려져 있는 클라라 바우는 브룩클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말할 수 없는 비참하고 처절한유년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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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의 나이로 우연히잡지 공모에 당선된 그녀는 1922년 <무지개 너머(Beyond the Rainbow)>에 출연하면서 스크린에 데뷔했고 그 후 활달한 말괄량이 소녀 역할들을 도맡아 연기하며비교적 손쉽게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여배우로서 타고난 끼와 재능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으나,극도로 열악한 가정환경 탓에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은 적이 없는 이철부지 스타에 대한헐리우드 주류들의 시선은그리 곱지 않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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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영화시대가 도래하자 그녀의 세련되지 못한 억양은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고 자연히 인기도 떨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직업과 섹스 심볼로서의 이미지를 짐스러워하기 시작했으며, 1933년 동료배우 렉스 벨(Rex Bell)과 결혼한후 26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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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브룩스 Louise Brooks

출생: 1906년 11월 14일

사망 : 1985년 8월 8일

출신 : 미국, 뉴욕

신장 : 1.57 m

닉네임 :Lulu, Scrubbie

1906년 캔사스의 체리 베일에서 태어난 루이즈브룩스는외진 시골 마을에서 자랐으나 예술적 소양을 갖춘 부모 덕에 문화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 루이즈가 열 살 되던 해 어머니는 그녀에게 무용을 가르쳐 주었고 15세가 되자 무용 강좌를 듣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중서부 시골 촌뜨기에 불과했던 그녀는 뉴욕에서 사투리를 교정하고 세련된 예절을 배웠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시키게 된다. (그녀는 '블랙 헬맷'이라 불리는 보브 스타일(bob style)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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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간 댄스 쇼의 쇼걸로생활하던 그녀는 1925년 'The Street of Forgotten Men'에 이름없는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데뷔했고 곧 이어 찰리 채플린, 허먼 멘키위츠, 험프리 보가트 등을 주축으로 한 '맨하탄 스마트 세트'에 소속되면서상류층의 일원이 된다. 이후 몇편의 영화에서얼마간의 명성을 획득했으나 그때까지도 그녀는 자의식과 주장이 강한 까탈스런 신인에 불과했다.

그러나1928년 독일 감독 게오르그 빌헬름팝스트(Georg Wilhelm Pabst) 감독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당시 팝스트는 자신의 신작<판도라의 상자(Die B?chse der Pandora)>의 여주인공 룰루(Lulu)역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당시 물망에 오른 배우는 마를렌느 디트리히였다. 하지만 팝스트는 디트리히가 자신이 생각하는 룰루의 이미지와는 어딘지걸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루이즈 브룩스의 재계약 파기 사건이 터졌고 그 소문을 들은 팝스트는 쾌재를불러고 대기중이던디트리히를 물리치고 곧바로 브룩스를 찾게 된다. (그일로 인해 루이즈 브룩스와 디트리히는 공공연한 라이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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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개봉한 <판도라의 상자>는 독일 비평가들로부터는 혹평을 들었으나 관객들은 루이즈 브룩스의 룰루에 하나같이 열광했다. 그녀는 당시 섹시함을 표방한 여느 여배우들처럼 눈을 부자연스럽게 치켜뜨지도 않았고 화장을 떡칠하지도 않았으며 눈에 띄게 요염한 제스쳐를 취하지도 않았다. 얼핏 밋밋하게 보이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 기법은훗날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가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를 창시하면서 대중화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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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외모, 꿈의 여인. 그녀가 없었더라면 극장이 시시해졌을 것이다'

 .... 아도 키루(Ado Kyrou)

판도라의 상자로 큰 성공을 거두자 헐리우드는앞다투어 루이즈 브룩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그녀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독일로 건너가 또다시팝스트와 호흡을 맞춘다. 그와 작업한<길 잃은 소녀의 일기(Tagebuch einer Verlorenen)>와 <미스 유럽(Prix de beaut? )>의 촬영을끝내고 얼마간 유럽에서 활동한 그녀는다시 헐리우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몇차례그녀에게서 무시를 당한 헐리우드는 루이즈 브룩스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고 말았다. 그 후그녀는 갖가지 불합리한 유혹 속에서 한번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으며 백화점 점원으로 일할 망정절대로타협하지 않았다. (컬럼비아사가높은 게런티와 함께 출연제의를 했는데, 제작자 해리 콘은 그 댓가로 성상납을 요구했으며 그녀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1938년, 루이즈 브룩스는 존 웨인과 공연한 <오버랜드 스테이지 레이더스(Overland Stage Raiders)>를 끝으로 미련없이 스크린을 떠났다.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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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 Rita Hayworth

출생 : 1918년 10월 17일

사망 : 1987년 5월 14일

출신 : 미국, 뉴욕

신장 : 1.68 m

닉네임 : The Love Goddess

영화 <쇼섕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에서 늘 과묵하고 점잖던 앤디가 레드에게 처음으로 은밀한 부탁을 한다. 그것은 바로 리타 헤이워드의사진을 구해 달라는 것.레드가 전해준그녀의 대형 브로마이드(세월의 흐름에 맞춰 사진은 헤이워드에서 마릴린 먼로, 라켈 웰치로 이어진다)는 앤디의 방 벽면을 장식하며 나름 중요한 역할을하는데, 그녀가 등장하는영화'길다(Gilda)'를 보면서 크게 탄식하는 레드의 표정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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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이름난 댄서 에드와르도 칸시노(Eduardo Cansino)의 딸로 태어나일찍부터무용에 소질을 보였던 그녀는 여덞살 때단편 뮤지컬영화 <라 피에스타(La fiesta)>에 이름없는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30년대 중반부터 몇년간리타 칸시노(Rita Cansino)라는 이름으로 삼류 영화의 단골 무용수로 활약하던 리타는 1937년 'Criminals of the Air' 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리타 헤이워스로 바꾼다. 같은 해출연한 <그림자(The Shadow)>와 <누가 게일 스톤을 죽였나(Who Killed Gail Preston?)>에서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헐리우드 재력가들의 눈에 띄게되는데, 특히 컬럼비아 영화사의 사장 해리 콘(몇해 전 루이즈 브룩스를 괴롭히던 바로 그치)이 그녀에게 큰 관심을 보인 후그녀는 스타 시스템의 경이로운 창조물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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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혹스 감독의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Only Angels Have Wings)>, 제임스 캐그니와 공연한 <스트로베리 블론드(The Strawberry Blonde)>, 루벤 마몰리언 감독의 <혈과 사 (Blood And Sand)>, 찰스 비더 감독의<커버 걸 (Cover Girl)> 등 컬럼비아사가 마련한 다수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순탄하게 스타의 길에 오른리타 헤이워드는1942년 첫 남편과 헤어지고 다음 해 대배우 오손 웰스(Orson Welles)와 결혼하면서 또 다른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1946년 찰스 비더 감독의 '길다'로 그녀의 인기는 하늘까지 치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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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는 모든 남자는 영락없이질다와 사랑에 빠졌고 나와 함께 정신을 차렸다'

길다는 영화속에서 두 남자(글렌 포드와 조지 맥크리디)를 심각한 삼각관계에 빠트려 회복 불가능한 인간들로 만든 요부였지만 현실의 남성들에겐 그저 너무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신이었다. 팔꿈치를 덮은 윤기나는 검은 장갑을 천천히 벗고, 찰랑이는 긴 머리를 한번 크게 휘젓는 것으로 리타 헤이워드는 수많은 남성들의 무릎을 꿇게 했다.그것으로전대미문의 선풍적인 인기를 한몸에 얻게 된 그녀이지만한편으론 큰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다. 1947년 남편과 함께 공연한 <상하이에서 온 여인(The Lady from Shanghai)>에선 자신의강력한 무기중의 하나였던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유혹적인 붉은 머리도 금발로 염색해 버린다.

다음 해 웰스와 이혼한 그녀는 1949년 페르시아 왕자 알리 칸(Aly Khan)과 결혼하면서 한동안 영화계를 떠나게 되지만 4년 뒤 다시 이혼,왕녀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헐리우드로돌아오게 된다.(그해 동료 배우 딕 헤임스와 결혼했다) <살로메 (Salome)>, <미스 새디 톰슨(Miss Sadie thompsn)> 등에 출연하면서 재기에 성공했지만 1957년 <팔 조이 (Pal Joey)>를 즈음해 광채를 뿜던 매력은 조금씩 사그라들기시작했다. 1960년 42세의 나이로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랑스러운 은막의 여신은 서서히 스크린 저편으로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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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레이크 Veronica Lake

출생: 1919년 11월 14일

사망 : 1973년 7월 7일

출신 : 미국, 뉴욕

신장 : 1.51 m

닉네임: The Peek-a-boo Girl

1997년 커티스 핸스 감독의 <엘에이 컨피덴셜(L.A. Confidential)>은 또 한 명의 섹시 스타 킴 베신저로 하여금마흔을한참 넘긴 나이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게 한 영화다. 거기서 요부 린역으로 분한그녀는 시종 길게 늘어트린 금발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신비한 매력을 선보였다. 바로 그 모델이 베로니카 레이크다.

지금은 조금 답답해 보이기도하는, 일명 '피커부(Peek-a-boo)' 헤어스타일의 대명사인그녀는 출연한 영화는 몇편 없지만 헐리우드 영화사에서 하나의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핀업섹시 스타로, 팜므 파탈의 대명사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그피커부 스타일을 따라했기 때문에정부에서 그녀에게 머리를 핀으로 고정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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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부터 단역배우로 활동하던 그녀는 1941년 <나는 날개를 원했다(I Wanted Wings)>에 출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같은 해 출연한 <설리반의 여행(Sullivan's Travels)>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돠었다.이듬해 프레드릭 마치와 공연한 코믹 판타지 영화 <나는 마녀와 결혼했다(I Married a Witch)>에서 제니퍼 역을 맡으며 코믹한 역할까지 능숙하게 소화해 낸다는 평을 들었으나 그녀의 삶 자체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십대 때부터 곧잘 우울증 증세를 보여왔던 그녀는 그때문에 몇 차례 정신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으며 그 증상은 스타가 되고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1950대에 들어서 잦은 폭음으로 몇차례 문제를 일으킨후 영화 관계자들과 동료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팬들도 곧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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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터너 Lana Turner

출생 : 1921년 2월 28일

사망 : 1995년 6월 29일

출신 : 미국, 캘리포니아

신장 : 1.60 m

닉네임 : Sweater Girl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에서 좀처럼 미소 짓지 않던 차가운 표정의 미녀. 일명 스웨터 걸(Sweater Girl)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섹시 스타 라나 터너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이혼과 빈곤한 가정환경 탓에 무척힘겨운 것이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운좋게 헐리우드 리포터 (Hollywood Reporter)의 편집인 윌리엄 윌커슨의 눈에 띄어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그녀는 1937년 <스타탄생(A Star Is Born)>에 이름없는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스크린에 데뷔했다.이듬해대여섯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차츰 비중있는 배역을 맡게 되었으며 1939년 <디즈 글래머 걸즈(These Glamour Girls)>와 <투 걸즈 온 브로드웨이 (Two Girls On Broadway)>에서 주역을 맡으며 비교적 단시일 내에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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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빅터 플레밍 감독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Dr. Jekyll And Mr. Hyde)>에 출연, 대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와 잉그릿드 버그만 사이에서 꿀리지 않는도도한 매력을선보였고, 이후 <지그펠드 걸 (Ziegfeld Girl)>과 머빈 르로이 감독의 <자니 이거 (Johnny Eager)> 등다양한 장르의 영화에도전하면서영역을 넓히게된다.하지만 그 무렵 그녀의 이미지는 여전히 핀업 걸이나 스웨터 걸의 이미지가 강해 연기력에 대해선 다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그녀는 1946년 자신의 대표작이라할 수 있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에 출연해 카리스마가 풍기는 매력적인 요부역을 완벽히 소화해내면서 리타 헤이워드 이후 가장 사랑받는 섹시 스타로 군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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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삼총사 (The Three Musketeers)>, <라이프 오브 허 원 (A Life Of Her Own)>, <미스터 임페리엄 (Mr. Imperium)>, <악당과 미녀 (The Bad And The Beautiful)>, <메리 윈도우 (The Merry Widow)>,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나별 생각없이 찍은 몇 편의 영화들은비평가들의 냉정한 혹평을 들어야 했다.또한아티 쇼(Artie Shaw)와 렉스 바커 (Lex Barker) 등을포함한 일곱 번의 결혼과 이혼, 그녀로 인해 빚어진 숱한 연애 사건들은 그녀 인생에씁쓸한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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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출생 : 1926년 6월 1일

사망: 1962년 8월 5일

출신 : 미국, 캘리포니아

신장 : 1.66 m

닉네임 : The Blonde Bombshell, MM

부모의 이혼, 편모 슬하, 모친의 정신분열, 불우한 가정환경 등... 어찌 보면 헐리우드 스타들 대다수의 어린시절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비참한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스타가 되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부여했을지 모른다.(그 과정에서 섹스 어필은 상당히 유효한 수단이 되기도 했을 것...)마릴린 먼로가 바로 그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심약한 모친이 몇번이나 정신병을 앓으면서 그녀는 고아나 다름없는 시절을 보내야 했고, 그 와중에 겪은 몇번의 성적 학대에 대한기억은 그녀에게 강한 트라우마를 남겼던 것 같다. 1942년 6월19일 만 열 여섯살의 나이로 평범한 노동자 출신의 청년 짐 도허티(James Dougherty)와 결혼했으나어물쩍 시작된 새삶이그녀의기대감을 충족시키진 못했다. 1946년 짐과 이혼한 그녀는 비슷한 시기 폭스사의 카메라 테스트에 합격해 연예계에 데뷔하는데,노마진 베이커란 이름은마릴린 먼로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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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단역배우로 전전하던마릴린 먼로는1948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 부사장 조니 하이드(Johnny Hyde)를 만나게 된다. (당시 31살 연상의그는죽기 전까지그녀를 돕기 위해 애썼다고...)

조니 하이드의 도움으로 1950년 <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에출연하면서차츰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나 그는 다음해 사망하고 만다. 이후 몇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차츰 감독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1953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나이아가라 (Niagara)>에 첫 주연으로 캐스팅 되는 행운을 거머쥔다.그리고 같은 해 개봉된 하워드 혹스 감독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Gentlemen Prefer Blondes)>,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How To Marry A Millionaire)>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영화 속에서 보여준유혹적으로 치켜든 턱과 반쯤 감긴 눈, 그리고 뭔가를 갈구하는 듯 살짝 벌어진 입술 등어딘지 좀 부자연스러운 듯한 특유의 표정은그녀의 영원한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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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강 (River Of No Return)>, <7년만의 외출 (The Seven Year Itch)>, <버스 정류장 (Bus Stop)>, <왕자와 무희 (The Prince And The Showgirl)>,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사랑을 합시다 (Let's Make Love)> 등 몇 년간 무수한 힛트작들을 내며 승승장구했음에도 불구하고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의 사생활은 결코행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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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수를 할 때 그 여자 몸의 흔들림이 내 몸에 흘러 들어와 충격을 주었다. " .... 아서 밀러

조 디마지오 (Joe DiMaggio), 아서 밀러 (Arthur Miller)와의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케네디(Kennedy)형제와의 스캔들, 두번의 유산, 폭음, 약물, 촬영장에서의 무책임한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쌓여 가면서 서서히 그녀 자신을 망가트렸고 결국 1962년 8월 5일 자택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로 요절한최고의 섹시스타. 그녀의 미스테리한 죽음은 그녀의 삶 자체를또 하나의 비극적인 신화로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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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킴 노박 kim novak

 출생 : 1933년 2월 13일

 출신 : 미국, 시카고

 신장 : 1.68 m

 닉네임 : The Lavender Girl


어릴 때부터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던킴 노박은십대 시절부터 모델로 활동하다 역시나 컬럼비아픽처스의 그 해리 콘의 스크린 테스트를 받은 후 연예계에 입문하게 된다. 해리 콘은 리타 헤이워드를 이을 또 다른 재목이 필요했고 동시에 경쟁사의 마릴린 몬로를 상대할 스타도 필요했다.(그녀는 마릴린 몬로 때문에자신의 본명인 마릴린을 킴으로 바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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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영화 <프렌치 라인(The French Line)>의 이름없는 단역으로 스크린에대충 신고식을 치른후, 다음 해 <푸쉬오버 (Pushover)>에서는 제법 비중있는 캐릭터가 주어졌다. 그리고 1955년 조슈아 로간 감독의 <피크닉 (Picnic)>에서 윌리엄 홀덴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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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출연한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Arm)>, <애심 (The Eddy Duchin Story)>, <진 이글스(Jeanne Eagels)>등으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숨가쁘게 스타로 완성된 그녀는 1958년히치콕의 걸작 스릴러 <현기증 (Vertigo)>에 출연하여 섹시하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은, 여타 다른 금발 미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기품있는 매력을 발산하면서 또 다른 매니아층을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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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맨스필드 Jayne Mansfield

 출생 : 1933년 4월 19일

 사망 : 1967년 6월 29일

 출신 : 미국 펜실베니아

 신장 : 1.65 m

 닉네임 : Jaynie

제인 맨스필드는 50년대에서 60년대까지의 대표적인 섹시 아이콘이었으며마릴린 먼로와 킴 노박을 잇는 차세대 핀업걸로 등장해 대중들에게 큰인기를 누렸다.그녀는 마치 만화속에 방금 튀어나온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섹시함을 부각시키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눈에는 여전히 마릴린 몬로의 숱한 아류 중에 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뿐이다.(텅빈 머리의 미녀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다니던 그녀는 사실 아이큐가 160이 넘는다고 한다)

대학 재학시절 미인 콘테스트 입상한 후 UCLA에서 연기수업을 받으며스타를 꿈꾸던 그녀는 1955년 영화<피트 켈리의 블루스 (Pete Kelly's Blues)>에 출연하면서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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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몇편의 영화에서 단역배우로 활동하던 그녀는 1956년 프랭크 태슐린(Frank Tashlin)감독의코미디 영화<못말리는 여자(The Girl Can't Help It)>에 여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 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못 말리는 여자'에서 갱스터의매력 넘치는 애인으로 분한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십분 살려 육감적이고 자극적인 매력을 마음껏 뽐내게 된다. 그 한편의 영화로 단숨에 남성 팬들을 사로잡은 그녀는TV와 스크린을 오가며섹시 스타로서의 이미지를굳히게 되었고, 1957년 프랭크 태슐린의또 다른 작품<성공이 록 헌터를 망쳐 놓았을까? (Will Success Spoil Rock Hunter?)>에 출연해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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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의 작품들속에서 그녀의 신체는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이용되었으며('프라미시스 프라미시스(Promises! Promises!)'에선누드로 출연하기도 했다),너무 남발되다 보니 그녀의 육감적인 매력도 더 이상 큰 자극을 주진 못했다. 1967년 6월 29일 끔찍한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녀는 미완성의 유작 <싱글 룸 퍼니시드(Single Room Furnished)>에서 천박한 매춘부역을 맡아 연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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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피아 로렌 Sophia Loren

 출생 : 1934. 9. 20

출신 : 이탈리아 로마

 신장 : 1.74 m

콤비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국민배우로칭송받고 있는소피아 로렌. 하지만 그녀의데뷔 스토리는 여타 다른 섹시 스타들과 별 차이가 없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무능력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빈민굴에서의 힘겨운 성장을 해야 했고,운명을 바꾸기 위해 비참한 두 모녀에겐기적적인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녀의 엄마는 14살의 딸에게 커튼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혀 미인대회에 참가하게 했고 그 성과로 2위에 입상하게 된다. 15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배우의 꿈을품은 채엄마와 함께 로마로 간 소피아 로렌은 몇년간 생활고를 면하기 위해 모델일과 단역배우를 전전해야 했는데 특유의 풍만한 몸 때문에곧 모델직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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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이탈리아의 코미디 영화 <토토 타잔(Tot? Tarzan)>를 시작으로몇년간 수십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출연하면서 누구보다빠듯한 신인 시절을 보내야했다.('쿼바디스 (Qvo Vadis)'에선 30달러의 출연로를 받고이름 없는 노예소녀 역을 맡았다고...) 그리고 그해 미스 이탈리아 선발대회에 다시 한번 출전한 그녀는 본선인 로마 대회에서 2위에 입상했고비록 최후의 수상자는 되지 못했으나 영화사의 주목을 끄는 데는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그 중 한 사람이 훗날 그녀의 애인이며 유일한 배우자가 될 카를로 폰티(Carlo Ponti)다)

뮤지컬 영화 <아이다(Aida)>에서 처음으로주연역을 따내었는데 아쉽게도 노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녀에게열광적이었다. <클레오파트라와 이틀밤 (Due Notti Con Cleopatra)>, <나폴리의 황금 (L'Oro Di Napoli )>, <소렌토의 염문 (Pane, Amore E...)> 등... 이후 몇년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십 여편의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그녀는 그렇게 각고의 노력끝에 이탈리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가 된다. 그녀의 명성은 곧 헐리우드에까지 닿았으며폭스사에서 제작된 <해녀 (Boy On A Dolphin)>에서 야성미가 물씬 풍기는 페드라역을 맡게 되는데, 그 허술한 한편의 영화 덕에소피아 로렌은국제적인 섹시심볼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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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케리 그란트와 공연한 <하우스보트 (Houseboat)>와1961년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두 여인 (La Ciociara)>으로호평과 함께 칸과 아카데미에서 여우 주연상을 휩쓸며여타 다른 섹시스타들과는 분명한 선을 긋게 된다. (칸에서의 수상은 이번 목록에서 그녀가 유일무이하며 세실 B. 데밀 상 등 그밖에 수많은 영화제에서 다양한 종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또한 첫사랑 카를로 폰티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알려지면서 그녀의 매력을 한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사랑의 변주곡 (Ieri, Oggi, Domani)>, <이태리식 결혼 (Matrimonio All'Italiana)>, <해바라기 (I Girasoli)> 등...한동안 데 시카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이후에도꾸준히 정력적인 활동을펼치며 영화사를 아울러 가장존경받는 여배우의 일인으로 손꼽히게 된다.소피아 로렌의 매력은 나이를 초월한 그 무엇이며섹시함을 넘어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매력을 극대화시킨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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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 )

출생 : 1934년 9월 28일

 출신 : 프랑스 파리 

 신장 : 키 170cm 36(B)-20-35. 


프랑스의 배우이자 가수1934년 9월 28일생. 활동 당시엔 '미국에 MM(마릴린 먼로)가 있고 이탈리아에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BB(브리지트 바르도)가 있다'고 할 정도로 섹스심벌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본인 입으로 "나는 젊은 시절 하루라도 남자가 없으면 잠을 못 잤다"고 정력을 자랑할 정도였다. 전성기 때 키 170cm에 스리사이즈는 36(B)-20-35. 10대 시절에는 거의 18인치에 가까운 허리를 지녔다고. 때문인지 염문도 많이 뿌리고 다녔는데 특히 세르쥬 갱스부르와 연애는 꽤 유명하다. 

배우로는 장뤼크 고다르의 《경멸》이라든가 《그리고 신은 여성을 창조했다》 같은 걸작 영화에도 출연했다. 공식적으로 처음 비키니를 입은 영화배우. 할리우드에서 뽑은 찌라시 '세계 10대 미인 중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수활동은 주로 세르주 갱스부르의 곡을 받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이자 여신인 이자벨 아자니의 데뷔 초기 수식어가 '제2의 브리지트 바르도'였다니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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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Claudia Cardinale

출생 : 1938년 4년 15일

출신 : 튀니지

 신장 : 1.73 m

 닉네임 : CC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가장 아름다운 눈을 소유한 여배우 중 한사람으로 꼽히며카메라 앞에서누구보다 크게 잘 웃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나 롤로브리짓다, 소피아 로렌과 함께 이탈리아가 배출한 3대 섹시 스타 중의 한 사람인 클라우디아는역시그들과 마찬가지로 미인대회 출신의 배우다. 1957년 대회 경품으로 베니스로 여행의 기회를 갖게 되는데 거기서 또 우연찮게 영화계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그길로 연예계에 진출하게 된다. 특히나 그녀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 사람은 제작자인 프랑코 크리스탈디(Franco Cristaldi )인데 그는곧바로 그녀를 스타 시스템에 도입시키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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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고하(Goha)>로 스크린에 데뷔한클라우디아는 같은 해 코미디 영화 <마돈나 거리의 한탕(I soliti ignoti)>에서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며 이탈리아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그후피에트로 제르미 감독의 <형사 Un Maledetto Imbroglio)>,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 (Rocco E I Suoi Fratelli)>, <들고양이( Gattopardo, Il )>, <올사의 아름다운 별 (Vaghe Stelle Dell'Orsa)>,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 1/2>, 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등당대 최고의 감독들과작업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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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부분의 영화를 유럽에서 찍었지만 헐리우드에서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으니, <지상 최대의 서커스( Circus World )>, <핑크 팬더>, <4인의 프로페셔널 (The Professionals)> 등 미국에서 몇편의 영화를 찍고한동안 마릴린 몬로, 브리짓드 바르도(약자로 MM, BB,CC)와 더불어 세계 삼대 섹스 심볼로군림하기도 했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곧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게 된다. 헐리우드의 노골적인 상업성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1980년대 클라우디아의 나이는이미 사십줄에 접어 들어섰지만 유럽의 감독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찾았다.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의 <찢어진 깃발 (La Pelle)>,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피츠카랄도 (Fitzcarraldo)>등 난해하기로소문난 감독들과 조우하면서 그녀는 이제 섹시 스타를 탈피해 여성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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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섹시 스타가 될 수 밖에 없는, 보기 드물게완벽한 외모를 소유했지만 그녀는 헐리우드의 인형같은 스타들과는 약간 차별화된 노선을 걸어왔다. 그녀는 스타보다 진정한 배우가 되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때문에 그녀는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몇몇 스타들처럼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하지도 않았다. 인공조명보다 자연광 아래에서누구보다빛이 났던여자. 그녀의 미소가 눈부시게아름다운 건 바로 그 당당함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동시대 또 한명의 섹스 심볼 브리짓드 바르도는 앞 포스팅에서 이미 다뤘으니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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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켈 웰치 Raquel Welch

 출생 : 1940년 9월 5일

 출신 : 미국, 시카고

 신장 : 1.68 m

50년대 이후 활동한몇몇 체격이 좋은 섹시 스타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미인 대회 출신 중 한명이다. 이전의 스타들이 주로 유혹적인 표정과 마스크로 어필되었다고 한다면 그녀들은 잘 발달된 신체와 육감적인 몸매로 상징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그만큼 스크린에서의 노출이 자유로워졌다는 뜻일 것이다. 60대 중반 헐리우드의 데표적인 핀업 걸로 활동하던 라? 웰치도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조건에적절히 부합하되면서 자연스레 섹시 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일찍부터 배우가 되고자했던 그녀는 대학에서 연기수업을 받았었고 졸업 후 한동안 지방 방송국의 리포터로 활동하게 된다. 그후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그녀는 1964년 <하우스 이즈 엣 홈(A House Is Not a Home)>에서 수많은 콜걸 중의 한명으로 출연하면서 스크린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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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심볼로 산다는 것은 어느면에서 기결수로 사는 것과 비슷하다'

한동안 TV드라마와 단역 배우로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1966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모험영화 <공룡 백만년 (One Million Years B.C.)>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단숨에 남성 팬들을 사로 잡게 된다. (쇼생크 탈출에서 분노한 소장의 돌팔매를 맞으며 복부에 구멍이 뚫린 브로마이드가 바로 공룡 백만년 속의 그녀다) 하지만 이후 그녀에게 맡겨진 역들은 대부분 눈요기감에 한정된 캐릭터들이었고 지나친 섹시함은 때때로 우스꽝스럽게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다.자신의 역할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진정한 승리 (Kansas City Bomber)>, <삼총사 (The Three Musketeers)>, <와일드 파티 (The Wild Party )>, <마더 적스 앤 스피드(Mother, Jugs & Speed)> 등에서 나름 변신을 꾀하기도 했지만 팬들의 기억속의 그녀는 언제나 모피로 된 비키니를 입고 야산을 뛰어나니며 익룡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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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 크리스텔 Sylvia Kristel

 출생 : 1952년 9월 28일

 출신 :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1952년 네덜란드 유트레흐트에서 태어난 실비아는 무척 힘겨운 성장기를 보냈다. 아홉살 때 한 호텔에서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열네살 무렵엔 부모가 이혼을 했다.조기졸업을 할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지녔지만 성공을 위해 종업원, 댄서 등을 전전해야 했던 그녀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모델이 되었다.그리고 이년 후 미스 유럽 TV 콘테스트에 출전해 우승하였으며 마침내 영화계에 진출하게 된다. 이듬해 개봉된그녀의 첫 출연작<엠마뉴엘 (Emmanuelle, 1974)>충격적인 스토리와 정사씬 등으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어느덧 파격의 상징이 되어 버린 그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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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그녀는 <줄리아 (Der Liebesschuler, 1974)>, <엠마뉴엘2 (Emmanuelle L'Antivierge, 1975)>, <보디 게임 (Une Femme Fidele, 1976)>, <라 마즈 (La Marge, 1976)>, <굿바이 엠마뉴엘 (Good-bye, Emmanuelle, 1977)>등 기존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찍다가 활주로 재난영화의 막차라 할 수 있는 <에어포트 79 (The Concorde: Airport '79, 1979)>의 출연을 계기로 헐리우드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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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프랑스와 미국에서 그녀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바로 <차타레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과 <개인교수 (Private Lessons)>다. 무자비한 가위질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흥행에 성공했는데, 특히 어처구니 없는 스토리의 B급영화인 <개인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오천만불이라는황당한 흥행실적을 올렸다. 그렇게 한동안 그녀의 영화는 작품성과 무관하게 항상 화제를 낳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매력과 몸과 영화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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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는 <마타 하리 (Mata Hari, 1985)>, <개인교수2 (The Big Bet, 1989)> 등 그녀의 몸을 내세운고만고만한 영화들을 다수 찍었으나, 전성기를 지나면서 더 이상 섹스심볼로서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서서히 잊혀져 갔다. 160이 넘는 지능에 4개국어를 구사하던 그녀는 나이차가 많고 지적인 남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첫번째 남자는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나던 벨기에의 작가였고, 두번째 남자 이안 맥세인 역시 열 살이나 차이가 났다. 훗날 실비아는 그와 LA에서 함께 보낸 오년간을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꼽았다. 2006년 그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좌절, 마약과 알콜 중독, 암 수술과 투병생활 등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파노라마 같은 한 스타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현재 암스테르담 근교에서 요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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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서린 터너 Kathleen Turner

 출생 : 1954. 6. 19

 출신 : 미국, 미주리

 신장 : 1.73 m

캐서린 터너는 1980년대 백만불짜리 다리라 불리며 보험을 드네 마네입방아의 대상이 될 정도로 소문난 각선미의 소유자다. 한편에선 찢어진 원피스를 입고 정글을 누비던 건강한 관능미를 또 한편에서는 절제되고 지적인 팜므 파탈을 연기해 보이며 80년대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그녀는 외교관인 부모덕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풍부하고 폭넓은성장기를 보냈고 영국의 센트럴 스쿨에서 연기 수업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1981년 혜성처럼 등장한 그녀는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보디 히트 (Body Heat)>에 출연해 남자 주인공 윌리엄 허트를 유혹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단숨에 섹시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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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로맨싱 스톤 (Romancing The Stone)>에서(지금으로선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지만)당대 섹시 스타인 마이클 더글라스(Michael Douglas)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건강미 물씬 풍미는 섹스 어필을 과시했다. 그리고 같은해 영국의 괴짜 감독 켄 러셀의 <크라임 오브 패션 (Crimes Of Passion)>에서 매춘부로분해 이중적생활을 하는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그 노골적인 연기에 팬들은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프리찌스 오너 (Prizzi's Honor)>, <페기 수 결혼하다 (Peggy Sue Got Married)>, <우연한 방문객 (The Accidental Tourist)>,<장미의 전쟁 (The War Of The Roses)>...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내며 1980년대 섹시함과 지성, 거기다 카리스마까지 겸비한 몇 안되는 배우로 손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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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론 스톤 Sharon Stone

 출생 : 1958년 3월 10일

 출신 : 미국, 펜실베니아

 신장 : 1.74 m

17세의 나이로 미인 대회에 입상한 그녀는 한동안 모델로 활동하다가 1980년대부터 배우가 되기 위해모델일을 그만둔다. 1980년 우디 알렌 감독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스 (Stardust Memories)>에 이름없는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진로를 바꾼그녀는 1981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악령의 리사 (Deadly Blessing)>에서호러퀸으로 분하는데경험이 미천한숱한 호러퀸들이 그렇듯 이후 꽤오랜동안 TV 드라마와 별볼일 없는 영화에출연하면서 무명배우의 설움을 견뎌야 했다. 1985년 시리즈 모험영화 <킹 솔로몬 King (Solomon's Mines)>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지만 영화는 캐서린 터너의 <로맨싱 스톤>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듣게 된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세월을 허비하다 어물쩍 서른을 넘기고 마는데,1988년폴 버호벤(Paul Verhoeven) 감독의 <토탈 리콜 (Total Recall)>에서 대스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아내역을 맡으며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다지 크지 않은 비중의 배역이었으나 무방비한 상태의 남편을 공격하는 비정하고 아름다운 아내 역할은 팬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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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으로 그녀가 바로 스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관객들에겐 아직도 신인에 불과했으며 이미 젊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였기에 돈많은 제작자들이 선뜻 그녀를 받아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렇게 몇년을 지지부진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는데 비로소 기적같은 일이 생긴다. 그 네델란드 출신의 비주류 감독이 다시 한번 그녀를 찾게된 것. 샤론 스톤은 1992년 폴 버호벤 감독의 <원초적 본능 (Basic Instinct)>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양성애자로 분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특히 다리를 꼰 채 형사들의 심문을 받던 장면은숱한 화제와 함께 이후 섹시 스타를다루는 자료들에서도 대표적인 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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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슬리버 (Sliver)>에서 또 한번 섹시한 매력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그런 식으로 굳혀지는 게 못마땅했던 그녀는 이후부터 작품선택에 신중함을 기하게 된다. 1994년끌로드 소떼 감독의 '즐거운 인생'을 리메이크 한 작품<마지막 연인 (Intersection)>에서 한껏 고상하고 정숙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1995년 전에 없이 열연을 펼쳤던 <카지노 (Casino)>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서서히 섹시 스타의 이미지를 탈피한샤론 스톤뒤늦은 전성기를 맞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