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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하추동

금문신고와 금문 연구

금문(金文)은 주로 청동제기에 쓰여져있는 문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금문은 9,000자로 알려져 있지만 해석 가능한 것은 1,000자 정도다.


문자의 발전체계를 보면 글자를 새겨넣은 재료에 의해서 시대적 구분을 하는데 거북등이나 동물의 뼈에 새겨넣은 갑골문과 청동기 주물에 새겨넣은 금문으로 차례를 정한다.

금문은 은(殷)·주(周)·춘추전국시대에 만든 청동기, 종(鐘)·솥(鼎)·항아리(尊)·술잔(爵)·병기(兵器)·전폐(錢幣) 등에 새긴 글자로 서체의 발전으로 보면 한나라 이전에 썼던 글자, 전서(篆書) 중 하나이다. 

종과 솥, 향로 등에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어 종정문(鐘鼎文)이라고도 불렀다. 

따라서 금문은 청동기에 새긴 글로 동물의 뼈에 새긴 갑골문보다 시대적으로 늦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금문에서 더 원시적인 모양의 글자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이 열렸다.

금문을 바로 해석해냄에 따라 일반적으로 신화시대로 구분되는 3황5제 중 5제 시대의 금문의 내용은 갑골문보다 무려 1000년을 앞선 내용의 기록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의 금문 연구는 소남자 김재섭 선생이 인사동에서 중문으로 된 고 낙빈기의 '금문신고'를 입수하여 연구하고 원 저자인 중국의 낙빈기 선생과 서신으로 교류하며 직접 중국으로 찾아가 생전에 만나서 토론을 하면서 차차로 그 내용이 밝혀져 오고있다.



금문은 신화시대로 불리우는 3황5제 중 5제 시대의 것으로 금문은 갑골문보다 무려 1,000여년을 앞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 5제시대의 금문이 바로 한민족의 조상으로 분류되는 염재 신농씨의 후손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낙빈기선생은 작고하시기 전에 김재섭 선생에게 대륙의 상.고대 역사의 큰 줄기는 동이족의 것임을 시인하고 돌아가셨다. 다시말해 대륙의 원주인은 고조선임을 인정하였다는 말이다.

금문신고는 김재섭 선생에게서 수학한 일부인사들이 다투어 선생의 허락도 없이 출간한 몇 가지가 있고 최근에는 김재섭 선생께서 친히 출간한 책이 바로 '금문 속의 고조선'이다.


        김재섭선생


김재섭선생은 전남 장성에 사당을 둔 울산 김씨 종손으로 사당지기이시다. 초년에는 언론에 종사하시고 시인들과의 교류도 돈독했다.

선생은 신라문무왕 비문에 나타난 여러가지 의문을 풀려고 노력하시다 천우신조로 만나게 된 금문신고를 연구하시면서 문무왕 비문에 쓰여진 몇가지 중대한 역사적기록과 일치하는 사실을 밝혀내셨다.


김재섭선생에게 처음 동문수학한 교우로 과거 한배달 사무국장을 지낸 조옥구 교수는  '21세기 신 설문해자'와 '한자의 기막힌 발견' 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금문에 대해 한 두가지를 설명을 곁들인다. 


<서청고감전록(西淸古鑑錢錄)>에 수록된 옛날 돈 가운데 "ㅣ"자가 바로 신농씨를 나타낸 것으로 이는 최초의 글자이다. (그림1)

 

 

"ㅣ"자는 발전해서 "申"자가 되었는데 "申"은 남성 생식기를 상징한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設文解字)>(AD 30-124)에 신(申);신야(神也)종구자지야(從臼 自持也)라 해서 "여음(女陰=臼 )을 쫓는 자지(自持;스스로 사람의 씨를 갖는 것)과 신(神)이다"라고 해석을 달아 남성 생식기 부호가 "ㅣ"-> "申" -> "神"으로 변천해 간 것을 알 수 있다. 



신농씨의 부호는 후에 "한아버지 조(祖)로 발전하는데(그림2) 이는 중국에서 같은 음을 가진 다른 문자 "새 조(鳥)로 읽으며 "조->좆(자지)"을 의미한다. 


우리가 상스럽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성스럽고 위대한 우리의 조상을 뜻하는것이었다. 상고시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의 심볼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중국의 시조라 일컫는 '하(夏)'자이다.

설문해자(說文)에 위 글자로 썼는데, 이를 풀면 즉 ‘足’氏에 의해 두 손으로 받들어진 ‘一自人’이란 개념이다. 오늘날 頁(머리 혈)은 爺(야)聲로 읽고, 夏(하)가 禹(우)를 받들어 始祖(시조)  “一自人”으로 삼아 古 ‘首’字가 되었다.


한자로 사당 '묘(廟)' 자에 나라이름 하(夏)자가 아닌 조(朝)자가 집가 변아래 놓인 것은 종묘사직을 다투는 그 근원이 하(夏)가 아니라 조(朝)로부터-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 방증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본래의 의미인 종묘나 사당은 ‘묘(廟)’자를 별도로 만들어 사용하고 정작 ‘朝’자는 ‘아침’이란 또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