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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와호장룡

안익태 (Ekitai Ahn) - 만주환상곡

이 영상에서 연주되는 곡은 에키타이 안(한국명 안익태)가 작곡하고 지휘한 '만주환상곡'이다.

이해영교수의 자료 중에서//

[에키타이 안] 폐친 조계문님이 홍영두교수의 중계로 안익태=에키타이 안의 1942년 9월 '만주환상곡' 장면을 다시 편집해서 유튜브에 성공적으로 복원시켜 놓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미 밝힌 대로 이 40초가량의 연주회 클라이막스 장면은 프랑스국립영상원INA 가 소장한 나치독일 점령기인 1942년 10월 2일자 전황뉴스의 마지막부분에 실려 있다.

연주장 맨 앞에 앉아 있는 자는 당시 주독 일본대사이고 그 옆은 만주국 영사가 아닌가 싶다. 이 시기는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공습이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한 창인 시점이었다. 당시 상해 임정은 진주만 공습 직후 대일 선전포고를 정식으로 한 바 있다.

아무튼 일본의 놀라운 전광에 당시 독일 전역은 일본붐이 불고 있었다. 안익태가 본격적인 친일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이시기이고, 독-일문화협정에 따라 독, 일 양국은 프로파간다 활동을 상호지원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반관반민의 독-일협회가 독일 전역에 조직되어 있었고 이 협회의 지원으로 에키타이는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물론 에키타이가 재독 일본음악인의 선두 혹은 일진은 아니었다. 당시 일본수상의 친동생이자 일본귀족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던 고노에가 먼저고 그 다음이 에키타이였다.


이 영상에서 연주되는 곡은 '만주환상곡'이다.

내가 누차 말한 바 있지만 에키타이는 30년대에 작곡했던 '코리아 환상곡'을 자기표절 바로 만주곡 건국 10주년 기념일에 맞추어 '만주환상곡'을 지휘했고, 이후 동일한 곡을 '극동', '동아'라는 이름으로도 지휘했다.

에키타이는 독일점령국이거나 추축국을 중심으로 유럽 곳곳에서 자신의 이 곡 만주환상곡을 지휘했다. 거의 1942년-43년이다. 그러다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뒤 당시 파리에 연주여행중이던 에키타이는 프랑코 파시스트정권이 집권한 스페인으로 도주한다.

논란의 핵심은 지금 한 40초 정도 나오는 만주환상곡이 과연 애국가가 포함된 코리아환상곡이냐 아니냐다.

현재 에키타이 본인이 바로 만주환상곡의 악보를 폐기처분했고, 영상 속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사용했을 악보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금 독립기념관에 남아 있는 코리아환상곡의 가장 오래된 버전은 에키타이가 스페인으로 도주하던 중 가지고 있던 만주환상곡 악보를 폐기하고 이를 이보한 바로 그것이다. 훗날 에키타이는 이 악보를 '민족의 영도자' 이승만에게 헌정했다.

그리고 이 곡이 음반으로 제작된 것은 확실하다. 왜냐 하면 에키타이가 스페인으로 도주한 뒤에 바르셀로나 방송국 편성표에는 만주환상곡이 방송된 일자 시간등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리고 음반으로 방송한 사실도 기재되어 있다. 이 편성표는 내가 이미 포스팅한 바 있다. 바로 이 SP음반을 찾아 낸다면, 애국가 논쟁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갈 것으로 본다. 그리된다면 정부도 지금처럼 소닭보듯 할 수는 없을 게다. 안익태의 친일부역 행위 여부는 전혀 논란거리가 아니라고 나는 본다. 그저 이 동영상을 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답변은 충분하다. 그리고 7분짜리 영상도 이미 존재한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이 SP음반을 찾으러 가야것다.

 

"A Berlin, le célèbre chef d'orchestre japonais Ekitai Ahn dirige lui - même l'exécution d'une de ses oeuvres qui révèle l'influence occidentale sur la musique nippone d'aujourd'hui. 베를린에서는 유명한 일본인 지휘자 에키타이 안이 그의 작품 중 한 곡을 직접 지휘 연주하는데, 이 곡은 오늘날 일본 음악에 미친 서양의 영향을 보여준다. "

 

 

안익태 한국 환상곡 Korea Fantasy 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